망각에 저항한다
개회사 by 재미교포 미술가 민영순
안녕하세요- 아름답고 화창한 오후에 이곳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로스엔젤레스에 살고있는 미술가, 민영순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예술가들(내일소녀단과 요시코 시마다씨)과 그들의 퍼포먼스 작품을 소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 이 퍼포먼스가 글렌데일 센트럴 공원에서 이루어지게 된 배경과 이 장소의 특수한 맥락이 퍼포먼스에 어떤 비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지 간략하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에 앞서, 캘리포니아 한미 포럼(KAFC, Korean American Forum of California)에서 이사를 역임하신, 미국 관중들에게는 필리스 킴 (Phyllis Kim)으로 알려져 있는 김현정씨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캘리포니아 한미 포럼은 그 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맞서 로스엔젤레스에서 중요한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이 글렌데일 공원에 건립될 수 있게 시의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냈을 뿐 아니라, 소녀상을 제거하려는 일본 정부의 끊임없는 요구에 맞서 동상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힘써왔습니다. 그리고 이메일 뉴스레터를 통해 정기적으로 관련 소식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2013년에 이곳 글렌데일 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기 위해 미서부에서는 처음으로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작년에 샌프란시스코에 또 다른 기념비가 세워졌지요. 일본 정부는 이 기념비들이 상징하는 식민지의 역사를 끈질기게 부정해오고 있으며, 국내외의 기념비들을 없애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부정하는 역사란 제2차 세계대전(1932-1945) 당시 일본군이 진군했던 아시아 모든 지역에 (매우 모순적인 명칭이지만) 위안소와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누구나가 알고계실 만한 이 사건은 공식적인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는 누락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전쟁 당시 위안소와 위안부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위안소가 정부가 아닌 민간업자들의 주도하에 운영 되었고 위안부들이 본질적으로 창녀라고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20만명의 소녀들이 성노예로 강제 착취 당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식민지 조선인이었고, 그 밖에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일본 정부는 공식적인 사과없이 민간 기부금 형태의 배상금을 위안부 생존자들에게 지불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다수 위안부 생존자들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존자들은 일본 정부의 뚜렷하고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인 배상을 요구하고 있고, 교육을 통해 역사를 망각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최근에 또 한 분의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셔서 한국에 현재 30명의 위안부 생존자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1991년에 대중 앞에서 고백한 뒤 입니다. 그녀의 용기있는 행동은 다른 위안부 생존자들이 어두움에서 나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생존자 할머니들과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운동가들은 위안부 문제의 연구 뿐 아니라 이 문제가 세계의 이목을 끌 수 있도록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여러 기념비들 가운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곳 글렌데일 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서울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동명의 기념비를 그대로 본따 만든 것입니다. 한국의 조각가 부부가 탁월하게 디자인한 이 작품은 비영리 단체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으며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 전략적으로 비치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빈의자 옆에 앉아있는 소녀는 주먹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차분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은 생존자 할머니들을 위한 수요집회가 매주 열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오늘 퍼포먼스를 발표할 예술가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일본에서 오신 요시코 시마다씨는 90년대 후반부터 저와 꾸준히 인연이 닿았던 분입니다. 90년대에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시마다씨의 작업과 저의 작업이 같은 출판물에 수록되기도 했고, 제가 2002년 제4회 광주 비엔날레의 전시를 기획했을 때 시마다씨의 작품을 초대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군기지가 있는 일본 서부의 타치가와시에서 나고 자란 시마다씨는 60년대의 성장 과정 속에서 미국-일본 간 전후의 긴장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그녀는 1982년 스크립스 대학(Scripps College)에서 인문학으로 학사 학위를받았고, 2015년에 런던의 킹스턴 대학에서 미술/디자인/건축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시마다씨가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침략자이자 피해자로서 여성의 위치와 문화적인 기억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격 연습(Shooting Lesson)"이라는 1992년의 동판화 작업은 네명의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의 초상과, 조선에 주둔한 일본 헌병의 아내들이 지역민으로부터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 사격 연습하는 사진을 병치합니다.
시마다씨는 2012년에 처음으로 "일본인 위안부 동상 되기"라는 퍼포먼스를 런던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퍼포먼스 작품을 이곳에서 곧 시연할 것입니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군을, 그리고 전쟁 후에 미군을 상대해야 했던 일본인 위안부 여성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여성들의 역사는 일본 정부 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잊혀졌습니다. 전시와 전후 강제적인 성노예 제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외면이 아니더라도, 이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과거 일본인 위안부 여성 스즈코 시로타씨는 자서전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성노예 경험을 용기있게 서술하였습니다. 그녀가 199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을 살았던 기독교의 보호시설에서 1971년에 출판된 이 책에 따르면 20만여명의 아시아인 위안부 여성들 가운데 10퍼센트는 일본 여성이라고 합니다.
시마다씨의 작품은 과거의 전쟁 범죄 뿐 아니라 제도화된 성차별주의를 인정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폐부를 찌르고 있습니다.
오늘 퍼포먼스를 해주실 두번째 예술가는 2015년에 창단한 미술/운동 그룹 내일소녀단(Tomorrow Girls Troop)입니다. 내일소녀단의 멤버는 일본, 한국, 미국에 기반한 예술가, 활동가,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느 21세기의 신세대 그룹처럼 내일소녀단은 멋진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웹사이트에는 자기소개를 비롯해 전시, 퍼포먼스, 시위, 서명운동, 강연, 워크숍 등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이미지와 정보가 가득합니다.
내일소녀단의 멤버들은 익명으로 활동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토끼 가면을 착용하는데, 이는 일본 전통 우화에서 주로 나약하고 온순한 것으로 그려지는 동물인 토끼를 힘과 용기의 상징으로 재정의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토끼 캐릭터는 선진국 중에 가부장제가 가장 공고한 곳(일본,한국)에서 페미니즘과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메시지를 매개합니다.
내일소녀단의 웹사이트는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동아시아에 모든 성과 젠더의 평등을 위해서.
우리는 4세대 페미니스트들이다. 우리의 성별과 국적은 다양하다.
우리는 사회적 예술 그룹이다.
우리의 작업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예술과 사회 운동 프로젝트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젠더 불평등 문제에 집중한다.
우리의 목적은 남성, 여성, 그외에 다양한 LGBT 공동체를 포함해 모든 성의 평등을 위해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선언문에서는 비록 일본과 한국의 문제를 특정하고 있지만, 내일소녀단은 "미투(Me too) 운동"이 만들어낸 현재 이곳(미국)의 상황에 그들의 작업이 어떻게 반향할 수 있는지 모색하고 있습니다. 내일소녀단은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퍼포먼스를 발표할 것입니다.
오늘 있을 두 예술가들의 퍼포먼스와 이곳에 모인 여러분 모두는 우리를 침묵케 하려는 일본 정부에 맞선 투쟁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역사를 이어나갑시다!!!"